[다이쿠로다이] 오래된 연인의 초상 프롬프터의 커서가 깜빡거리며 점멸한다. 너른 부스에는 캐치한 자동차 광고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벌써 오늘 세 번째 듣는 멜로디였고, 어느새 익숙해진 쿠로오는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눈은 프롬프터를 향하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다. 그는 집에 사둔 음식 재료가 있는지, 혹은 가는 길에 무엇을 사가야 할 지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하는 거의 기계적인 연상에 가까우므로 사실 의식적인 생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저 반사적인 습관이라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말하자면 쿠로오 테츠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백지장처럼 단순하고 명료해 보이는 상태이지만 실은 여러 층위의 작용으로 설계된 복잡한 경지이다. 쿠로오가 3분 남짓의 광고 시간, 그에게는 찰나에 불과한 .. 더보기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