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 꽃잎이 품은 말은 부정이었다. 초등학생도 유치하다며 마다할 꽃잎점이라니.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이 점이 가리키는 것보다 꽃잎 한 장을 더 필요로 하며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장이 부족한 꽃잎은 장미꽃잎 주제에 낙엽보다 허무하게 퍼덕이며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시시하다. 방금 전 열렬한 고백과 함께 받은 꽃인데 이걸 준 여자애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네 뜨거운 사랑은 이렇게 허망하게 져버리는 거란다. 나는 그 여자애가 아닌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의 사랑도 그의 앞에서는 초라하게 고꾸라질 것이니.
소리 없는 내 열렬한 사랑의 대상은 팔자 좋게 옆에 늘어져 마이쨩인지 뭔지의 화보를 뒤적이고 있다. 작년만 해도 저런 지저분한 건 보지 않았는데. 가끔 들춰보기는 했던 내가 나온 잡지도 이제는 주면 패스하듯이 등 뒤로 던져버리면서. 요즘 들어 아오미넷치의 건방짐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콧대도, 눈길이 향하는 곳도 어찌나 높은지 낮은 지대를 향해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나는 저 시건방진 인간의 대체 어디가 좋은 걸까. 나를 쳐다봐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농구를 하고 있던 아오미넷치와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가 사랑의 시작이었을까.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처음 내 시야에 들어온 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를 눈으로 좇았고, 어느새 눈의 깜빡임이 줄어드는 동시에 심장이 더 크게 뛴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뿐이다. 나조차 뒤늦게 자각한 감정인데 저 둔치가 눈치 챌 리가 없지. 한 마디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었고, 아오미넷치가 농구공을 다루는 것과 달리 사람의 감정에는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왠지 억울하다. 내가 당신만을 보고 있잖아. 모르는 건 말도 안 돼.
하지만 아는 건 더 말이 안 되겠지. 연습에 게을러지기 시작한 즈음부터 이 옥상을 자주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도 내가 제일 먼저인데도. 아오미넷치는 최근 틈만 나면 여기로 올라와 그 커다란 덩치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조는 습성이 생겼다. 버릇이라고 할 수도 없다. 늘어진 모습이 꼭 고양잇과의 짐승 같으니까. 내가 여길 찾아오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왜 왔냐고 묻는 모습이 영락없이 제 영역을 침범당해 경계하는 고양잇과다.
오늘도 그랬다. 이벤트라고 하기엔 너무 흔한 어느 여자애의 고백을 받고, 나는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상태로 옥상으로 연결된 계단을 올랐다. 내가 받았던 수많은 고백들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 애로부터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았다는 것이다. 보통 여자애가 남자애한테 꽃을 주나. 나는 고작 장미꽃 한 송이가 풍기는 부담스런 향기에 질식해 죽을 것처럼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그리고 옥상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 전부터 그렸던 꼭 그 모습으로 아오미넷치가 벽에 기대 누워 있었다. 여느 때처럼 뭐야, 하고 퉁명스레 묻더니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손에 그건 뭐야?
그의 단순한 질문 하나에 내 머릿속에서는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보면 모름까? 꽃이잖아요. 아니면 내가 이걸 왜 들고 있는지 궁금함까? 알잖아요, 나 인기 많은 거. 여자애한테 받았슴다.
그런 평범하고, 조금 가시 돋친 말들이 떠올랐지만 하나도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꽃을, 아오미넷치 당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주면서 고백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이 꽃을 내밀며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물어본 주제에 금세 그 망할 화보로 고개를 돌리는 아오미넷치에게 손에 들린 꽃을 눈앞에 내미는 그런 상상을 했다.
나는 결국 입만 뻐끔거렸다. 아오미넷치는 내 대답을 짐작한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내 대답 따윈 필요하지 않았던 건지 더 묻지 않았다. 한 번 더 물어봤으면 성질이 나서 얼굴에 꽃을 던져버렸을 텐데. 아오미넷치는 내게 관심이 없고, 나는 매달리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을 정도로 그를 절절히 좋아한다. 먼저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어 오기가 생겼다. 비록 말도 못하게 아오미넷치를 좋아하지만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휘둘리지 않기로. 내 감정은 그의 작은 손짓, 눈짓 하나에도 널뛰지만 절대 내색은 않을 것이다. 아오미넷치가 무슨 말을 하든,
“야, 키세.”
꿈쩍하지 않을 것이야.
“너, 나 좋아하지.”
절대로-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아오미넷치의 목소리에 내 몸은 꼴사납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좋아’라는 발음이 지독히도 생소해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웃었다. 그가 장난으로 넘길 때까지. 그러나 아오미넷치가 같이 웃어주지 않았기에, 나는 장난으로 넘길 수도 없이 미친놈마냥 웃음을 멈출 타이밍도 못 잡고 소리 내어 웃었다.
‘좋아하지.’ 라니. 물음표가 붙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확정적인 어조다. 그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오건 꿈쩍하지 않으리라 막 다짐하고 있었건만. 저 짧고 거친 입에서 ‘좋아’ 따위의 간지러운 발음이라니.
나는 웃다가 죽을 것처럼 계속해서 웃어댔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나왔다. 내가 눈물을 훔치고 웃느라 아픈 배를 움켜쥐며 쭈그려 앉을 때까지, 아오미넷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를 보다가 곧 옥상을 나가버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지도 못 했다. 늘 나를 보던 그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절대 발음하지 않을 것 같던 ‘좋아’를 말한 것처럼 조금 다른 표정이었을까.
그림자도 흔적도 없는 그의 자리를 보며 나는 차마 웃음 대신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았다.
맞아요. 좋아해요, 좋아해.
하지만 나도 못 한 그 말을 당신이 먼저 하는 건 반칙이잖아.
분명 웃느라 아픈 것은 배였는데 그보다 조금 위쪽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쩐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통증에 나는 몸을 더 깊게 웅크리고 앞으로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할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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