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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디

[보쿠로리에] 暑さ



올 여름 도쿄의 더위는 살인적이다. 덕분에 리에프는 연습 경기 도중에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후쿠로우다니와의 경기가 저녁 식사 전 마지막 연습 경기였기 때문에 집중력은 더욱 빠른 속도로 산란됐다. 주위의 소음이 더위에 짓뭉개져 잘 들리지 않았다. 살아있는 감각이라곤 시각과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감하는 육감 뿐이었다. 마침 후쿠로우다니의 '그 4번', 보쿠토가 전위에 올라와 있었다. 리에프는 오늘 그의 스파이크를 한 번도 제대로 막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 한 번쯤은 막아야 해. 텅 빈 머릿속에서도 무의식이 외쳤다.


  보쿠토가 아카아시가 올린 토스를 강하게 내리쳤다. 공을 내리친 힘이 어찌나 센 지 진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리에프는 본능적으로 공을 좇아 힘껏 뛰었다. 발돋움이 약간 어긋났다. 그래도 힘껏 뛴 보람이 있는지 공은 리에프의 왼손에 걸려 튕겨져 나갔다. 블락킹에 성공했다는 걸 인지한 순간 모든 감각이 깨끗해졌다. 리에프는 그제야 뛰는 순간 삐끗한 바람에 무게중심이 흐트러졌고 쿠로오와 밀착해서 같이 뛰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옆으로 기우뚱하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헉."

  "어라?"


  쾅!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리에프의 몸이 쿠로오를 깔고 쓰러졌다. 리에프는 화들짝 놀라 쓰러지자마자 벌떡 일어났지만 쿠로오는 쓰러진 채 끙끙댔다. 코트에 있던 선수들을 비롯해 코치와 매니저까지 와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쿠, 쿠로상 죄송함다! 제가 중심을 잃는 바람에."

  "어이 쿠로오! 쿠로오 괜찮아?"

  "쿠로⋯."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쿠로오는 한쪽 팔로 바닥을 짚은 채 겨우 일어나 앉았다.


  "아아⋯, 괜찮으니까 호들갑 좀 떨지마."

  "정말? 정말 괜찮아? 이거 몇 갠지 보여? 어?"

  "호들갑 떨지 말라니까요, 보쿠토 선배."


  리에프는 쿠로오의 옆에 무릎 꿇고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행여나 어디 생채기라도 났을까 그의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다행히 외상은 없었다. 보쿠토가 내민 손가락 갯수를 일부러 틀리게 맞춰 장난을 치고 있긴 했지만 쿠로오의 미간은 찌푸린 채였다. 리에프는 더욱 울상이 되었다.


  "죄송해요 쿠로상! 저 때문에"

  "무슨 소리야 임마. 너 같은 덩치는 내가 알아서 피해야지. 코치님, 잠깐 보건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 그럼 제가 같이⋯!"

  "안 돼. 경기 도중인데 너까지 빠지면 되냐. 공평하게 한 명씩 빠지자. 보쿠토, 따라 와."

  "헉, 나?"

  "네가 스파이크 때렸잖아."


  그, 그렇지. 어쩐지 이상한 논리였지만 보쿠토는 군말 없이 쿠로오를 일으켜 어깨동무를 하게 했다. 쿠로오와 그를 부축한 보쿠토가 보건실로 가자 코트 위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


  "경기 재개하죠."


  아카아시가 공을 네코마 쪽으로 넘기자 다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야쿠가 자리로 돌아가면서 리에프에게 물었다. 넌 괜찮아? 새우등을 하고 멍 때리던 리에프가 겨우 대답했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다친 데는 없어보였다.


  리에프는 쿠로오가 사라진 자리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쿠로오가 나간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누오카의 발치를 보고 있었다. 어느새 더위 같은 건 잊혀졌다. 피로나 방금 부딪힌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넘어진 순간 찌푸리고 있던 쿠로오의 얼굴만 생각났다.





*





"수고하셨습니다!"


  체육관 도처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드디어 더위 속의 연습이 끝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었다. 유일하게 기뻐하지 않은 사람은 리에프였다. 쿠로오와 보쿠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채 후쿠로우다니와의 연습 경기는 또다른 일패 추가로 끝났다. 리에프는 경기 후반부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았다. 쿠로오가 언제 돌아올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느라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심지어 딴생각을 하느라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도 덥다고 느끼지 못 했다.


  체육관 안에 있던 각 팀의 선수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녁 먹을 준비를 하러 갔다. 리에프는 보건실에 가서 쿠로오의 상태를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야쿠가 리에프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리에프, 보건실 가서 쿠로오한테 밥 먹으러 가라고 전해줘."

  "앗, 네."


  할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야쿠는 망설이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녀석, 아마 괜찮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네가 서툰 건 다 아니까 특별히 네 잘못도 아니고."

  "하아⋯."

  "간다. 얼른 밥 먹으러 와."


  야쿠가 떠난 자리에 남아 리에프는 잠시 멍해졌다. 위로로 받아들여야 하나. 리에프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곧 발걸음을 보건실로 향했다. 상처가 커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오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한편으론 다른 이유로 안 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리에프는 불안함만 가득 느꼈다.


  리에프는 스스로의 불안감에 막연한 육감, 과 같은 허튼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이유라곤 그 뿐이었다. 쿠로오가 넘어지는 순간 덜컥 주위가 암전될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단순히 그가 부상이 생겨 경기를 못 뛰게 될까 하는 팀메이트로서의 우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쿠로오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지극히 일방적이다. 쿠로오에게 리에프는 분명 툭하면 징징대고 배구는 한참 모자란 키 큰 후배 정도일 것이다. 반면 리에프에게 쿠로오는 믿음직한 주장, 그 이상이다. 자신이 가진 감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도 명명하기 어렵지만 동경 이외에 그와 비슷한 어떤 감정이란 것은 확실하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 잡아서 돌려세우고 싶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그런 감정이다. 어느 순간 그런 감정을 갖게 된 이후 지금까지도 리에프는 그에 대한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 했다.


  보건실 팻말이 보였다. 보건실에 가까워질수록 리에프는 저도 모르게 내딛는 걸음의 무게를 죽이고 있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우선은 창문으로 동태를 살피고자 마음 먹었다. 보건실 안이 적팀의 베이스캠프 따위도 아니었지만 리에프의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안에 누가 있긴 한 모양인지 밝은 전등불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리에프는 일부러 시선을 찬찬히 돌렸다. 그리고





*





보쿠토와는 늘 이렇다. 둘만 남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공간. 이 두 조건이 갖춰지면 섹스를 한다. 붙어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거기에는 이유도 없고 앞뒤도 없다. 짐승처럼 서로의 입술을 마구 탐하면서 열심히 옷을 벗기고 거친 손으로 몸을 쓰다듬는다. 이상하게 어느 한 쪽만 텐션이 높은 경우는 거의 없다. 둘 다 열에 달떠서 정신없이 넣거나 받아들인다. 욕망이 앞서서 다른 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빨리 서로를 탐하지 않으면 주체 못 하고 달아오르는 열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터져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로오는 처음으로, 보쿠토와 하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보건실 침대에 걸터앉아 다친 데는 없나 살피다가 이상이 없다는 걸 알자마자 분위기는 묘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바보 같은 소리 몇 마디 지껄이다가 바로 입술로 돌진하고 마는데 오늘 쿠로오는 보쿠토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코트 위에 두고 온 무언가가 마음에 계속 걸렸다. 힘껏 달겨드는 보쿠토 때문에 온전히 마음을 쓸 수는 없었지만 자꾸 생각이 났다.


  "후, 후으⋯, 쿠로오⋯."

  "읏, 하 아⋯! 왜, 바보야⋯."

  "꽉 잡, 아."


  멋대로 호흡을 쉬며 보쿠토가 더 세게 쳐올렸다.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보쿠토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젠장, 이게 아닌데. 분위기나 상황을 읽는 것에는 둔감한 보쿠토였기 때문에 쿠로오가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알아채고 본능적으로 쿠로오를 몰아붙였다. 쿠로오는 보쿠토의 짐승 같은 기민함을 눈치 채고 혀를 내둘렀다. 그래, 집중하자. 그 순간 보건실 벽 위쪽에 난 작은 창문에 비친 눈동자를 발견했다. 눈동자는 요동과 함께 곧바로 사라졌다.


  아. 절정에 이를 때까지 쿠로오는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다. 보쿠토가 밀어붙이는 대로 끌려가다가 끝났다. 옷을 추스르면서 보쿠토가 물었다.


  "혹시 아픈 데 있어? 내가 너무 세게⋯했나?"

  "⋯⋯."


  풀 죽은 강아지 눈빛을 하고 묻는 보쿠토에 쿠로오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아닌데, 정말. 쿠로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보쿠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아니야, 멍청아. 안 아프다고 했잖아."

  "엣, 정말 안 아파? 그럼 저녁 먹기 전에 한 번 더⋯."

  "거긴 당연히 아프고 이자식아."


  둘은 보건실에 남은 흔적을 최대한 없애고 정리를 한 뒤 복도로 나왔다. 식당과 동떨어진 보건실 복도는 휑하기 그지 없었다. 있을 리가 없지. 예상하고 있었지만 쿠로오는 가슴에 허한 감각을 통감하고 있었다.


  "으아, 배고파 죽겠다! 식당식당, 고고!!"

  "네네."


  격렬한 운동 뒤의 공복 때문에 경보로 걷는 보쿠토의 뒤를 따랐다. 쿠로오는 걸으면서 눈꺼풀을 지긋이 눌렀다. 쓰러진 자신을 정신 없이 쳐다보던 리에프의 모습 위에 요동치는 녹색 눈동자가 데자뷰처럼 겹쳐졌다. 리에프가 다음에 자신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눈꺼풀을 누르던 손은 뗐지만 잔상이 시야에서 아른거렸다. 그게 마치 더위 속 아지랑이 같다고, 쿠로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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