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나 다니엘의 생활 리듬은 한 박자 빨라지기 시작했다. 새벽 내 이어지는 루피의 채근과 타령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수면부족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눈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번쩍 떠졌다. 분명 졸린 것은 맞는데, 억지로 다시 잠에 들려고 해도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루피의 화장실을 치우고 밥 그릇을 채운 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겨우 삼십여 분 이른 같은 출근길인데도 회사로 향하는 걸음이 영 어색했다. 늘 헤치던 인파보다 조금 더 많은 수를 헤쳐 회사 앞에 도착했는데도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다. 어쩐지 회사 로비로 직행하는 것에 반발심이 들어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얼마 전 성우와 함께 팀원들의 커피를 사러 함께 왔던 카페였다. 하필 앞에 두어 명이 줄을 서 있는 바람에 생각 없이 제 음료 만을 사려던 다니엘에게 제 것만 사서 들어가기 머쓱하단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 카운터 앞에 섰을 때 "열두 잔 주문할 건데요," 까지 얘기했으나 문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아이스 카라멜 마키아또랑요," 그 다음이 생각나지 않는단 것이었다. 굳이 팀 동료들의 커피 취향을 외우려 한 적 없으니 기억나지 않는 건 당연했으나 오히려 똑똑하게 기억나는 단 한 사람의 취향이 다니엘을 괴롭게 했다. 사실 부러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기 쉽지 않은 취향이긴 했지만 다니엘은 자꾸 자신의 모든 연상 작용의 결과가 옹성우를 향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절반씩 사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얼버무렸다. 335ml 음료 열두 잔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다니엘은 구두 굽 소리가 날 정도로 다리를 떨었다. 열두 명의 취향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한 사람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불편해서였다. 다행히 다니엘이 사무실에 도착해 커피를 나눠주자 사람들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군말 없이 각자 커피를 가져 갔다. 그리고 자신의 아메리카노와 카라멜 마키아또만 남았다. 왜 여즉 안 가져가고 남았나 했더니 팀장 자리가 비어 있었다. 가방이 있는 것을 보니 일찌감치 출근은 했는데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일단 그 책상 위에 음료를 두고 다니엘은 한참을 고민했다. 쪽지라도 남겨야 하나. 생색내려는 것은 아니나 난데없는 서프라이즈로 누가 사온 것이냐고 주위에 묻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성우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무지 포스트잇에 엉성한 글씨로 적어 넣었다. ‘맛있게 드세요.’ 너무 뻔한 멘트인가 싶다가도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역시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 밑에 이름 넉 자도 함께 적었다. 그리고 난 후에야 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았는데도 컴퓨터를 켜고 한 번, 메일을 확인하러 들어가면서 또 한 번, 메일 하나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성우의 자리를 확인했다. 심장 한 켠이 자꾸 빨리 뛰었다. 상사의 컨펌을 기다리는 입장이 다 그렇지 뭐, 하고 일전에 보고서 컨펌을 받을 때조차 느껴본 적 없던 초조함을 무마했다. 왠지 목이 타 방금 사온 아메리카노도 절반을 마셔버렸다. 그의 이성이 억지로 업무를 권할 때쯤 성우가 자리로 돌아왔다. 음료를 먼저 발견해 앞에 앉은 팀원에게 정체를 물으려다, 그 옆에 놓여 있는 포스트잇을 보고 다시 입을 앙다무는 것을 다니엘은 곁눈질로 모두 보았다. 설핏 웃은 것도 같았다. 그 희미한 미소까지 포착하는 바람에 성우가 다니엘 쪽을 바라보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까의 미소가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성우가 활짝 웃어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장 전체가 너무 빨리 뛰기 시작한다.
「웃더라」
그게 뭐라고. 아주 사소하디 사소한 일을 재환에게 보고하는 제 자신이 우스워 다니엘은 ‘허허’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왜 웃지」
「그럼 욕하리」
「나싫어하는줄알았는데」
「세상에 먹을거 받고 면전에 욕하는사람이 어딨냐」
「이상한데」
「뭐가」
「진짜 왜웃었지」
「여보세요 제말들리세요?」
한 번 들기 시작한 호기심이 다니엘의 사고방식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뭐든 그러려니 하는 법이 없어 궁금한 게 있으면 반드시 그 사정을 알아야 직성이 풀려, 자의에 반(反)해 호기심은 자꾸만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사무실 내 다니엘의 자리에서 고개를 위로 살짝 들면 바로 성우가 있는 팀장 자리가 보였는데, 오늘은 유난히 고개를 많이 쳐든 탓에 뒷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용케 눈 한 번 안 마주친 건 다니엘이 그토록 질색하는, 성우의 일중독 탓이었다. 성우의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거나 움직이는 법이 없어 보이지 않는 테두리 바깥으로 벗어나질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다니엘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 가면 안 되는 사람이 이동하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로 초조해졌다. 성우가 사무실 밖까지 나서자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곧장 뒤쫓아 나서니 성우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성우가 타고, 닫히려는 문틈 새를 막은 다니엘이 뒤따라 탔다.
“깜짝이야.”
“안녕하세요, 팀장님.”
“아, 안녕하세요. 다니엘 씨.”
“네, 팀장님, 그⋯”
말문을 열었지만 막상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것이야 많았다. 지난번 골목에서 목격한 장면부터 자신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까지, 성우에 대해서는 온통 채워지지 않은 빈칸 투성이였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멋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다. 다니엘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질문들 중 하나를 닥치는 대로 뱉었다.
“커피, 카라멜 마키아또만 드세요?”
“네?”
“아니, 저 다음에 살 때 참고할까 해서요.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봐⋯.”
느닷없는 다니엘의 질문에 성우가 옅게 웃었다. 아까 음료를 확인하고 다니엘에게 지어 보였던 웃음과 비슷한 웃음이었다. 또 빨리 뛰네. 영문을 모를 다급한 심장박동에 다니엘은 가슴께를 주먹으로 문질렀다.
“어? 어디 아파요?”
“아뇨, 그냥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어가⋯.”
“카페인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커피 잘 마시는 줄 알았는데.”
“네, 아니, 저 잘 마시는데. 근데 팀장님은⋯.”
“난 커피는 단 거 밖에 못 마셔요. 그래서 카라멜 마키아또.”
“아, 그럼 완전 단 음료수도 괜찮아요?”
“네, 그렇긴 한데, 다니엘 씨 어디 가세요?”
일방적으로 질문할 생각에 가득 차 있던 다니엘은 성우의 갑작스런 질문에 바늘에 찔린 풍선이 줄어드는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왜 묻는 걸까. 내가 어디 가는지 궁금해야 할 이유가 있나? 왜 그게 궁금한 거지? 같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왜 궁금하신데요?”
날이 선 것도, 호의를 두른 것도 아닌 질문을 묻고 말았다. 성우의 웃음소리와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동시에 다니엘의 귓전을 울렸다.
“우리 같이 팀장 회의 들어갈 거 아니죠, 그쵸?”
“네?”
“다니엘 씨 층수 누르는 거 깜빡한 것 같아서요.”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구 층, 회의실 외에 특별한 용도가 없는 층이었다. “몇 층 가요?” 성우가 다시 물었다. “일 층이요.” 귀 끝이 붉어진 다니엘이 답했다. 성우의 손가락이 일 층을 정성스럽게 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커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구요.” 라는 말을 덧붙인다. 문이 다시 닫히고 다니엘은 성우가 눌렀던 일 층 버튼을 다시 눌러 빨간불을 없앤 뒤 사무실 제 자리가 있는 삼 층을 눌렀다. 아무래도 정말 카페인이 문제인 것 같아 농담으로라도 커피는 또 안 사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 번의 부끄러움으로 종식될 호기심이었다면 애초에 ‘호기심’이라 이름 붙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은 이제 다니엘의 자의에서 비롯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성우의 경계(境界) 안에 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부딪히는 일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런 노력들이 눈속임이었던 것처럼 끈질기게 성우를 쫓아다녔다. 예를 들면, 시키지도 않은 자료 조사를 먼저 하겠다고 성우의 자리에 와서 청하거나, 보고서를 제출한 뒤 한 번도 자청한 적 없는 피드백을 끊임없이 달라고 메신저로 재촉하거나, 성우가 커피를 사러 갈 때면 꼭 같이 가겠다고 하거나 하는 그런 변화들이 있었다. 업무에 대한 다니엘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한 것은 성우에게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게 전부였다면 반기고 끝날 일이었지만 문제는 다니엘이 사족처럼 붙이는 질문들이었다. “팀장님은 사람 볼 때 어떤 점 보세요?”나 “팀장님, 싫어하는 사람 있으세요?” 같은 질문들은 점잖은 축에 속했다. 갓 시작한 사회생활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멘토를 필요로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니엘의 질문이 탈선하기 시작한 것은 부지불식간이었다. “사내연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둘은 1분기 매출 하락세에 대한 자료에 관해 얘기하던 중이었고, 성우는 추가 자료 조사를 부탁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앞뒤 문맥을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에도 맞지 않는 질문이었다. 성우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강다니엘 씨, 소개팅 나왔습니까? 왜 그런 걸 궁금해해요?” 그 순간 신경이 곤두선 성우의 대꾸를 들은 다니엘의 표정은 머쓱함보다 깨달음에 가까웠다.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하고 답하기에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널찍한 어깨의 수평선도 어째 한층 낮아보였다. 그래서 성우는 성실히 답해주고 말았다. “결혼할 거 아니면 하지 마요.”
그러니까, 이놈의 쓸데없는 성실함이 문제였다. 평상시의 성우라면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회식자리에서 거론했던 짝사랑 상대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 누구에게도 자세히 얘기한 적 없지만 성우의 짝사랑 상대는 대학 시절 학과 선배였던 사람으로, 당시에도 마음이 있었으나 평범한 선후배 사이로 졸업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동문회로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하필 자신이 바이일 지도 모른다고 고민상담을 해오는 바람에 만나는 상대도, 고민을 들어주는 단순한 친구 사이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성우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백해 뭐가 됐든 잠자리를 갖고 싶었지만 그 부질없는 성실함이 문제였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주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 믿어 의심치 않는 성우에게 좋아하는 선배의 고민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제 감정을 털어놓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는 동안 선배를 사모하는 성우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성욕은 무참히 쌓여 갔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마음만 싱숭생숭해져 가는 곳마다 넘치는 인기도 마다하고 팔자에도 없는 수절을 지키는 중이었다.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고민을 할 여유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주말에나 잠깐 있는 개인 시간을 제외하면 업무의 연속이었다. 고민할 시간조차 부족한 처지에 일에 쫓기고 있으니 자연히 스트레스는 업무에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사생활이 업무의 영역에 드러나기를 극도로 꺼리는 성우이기에 스트레스는 곱절로 늘었다.
이런 성우의 사정을 알 리 없으나 다니엘은 나름대로의 고민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성우의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어 불을 지피고 있었다. 성우를 향한 호기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애초에 왜 성우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이 궁금한지 스스로도 의문을 가져본 적 없었다. 그는 이제껏 자신의 호기심을 순수한 탐구심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냥 신기한 사람 만나면 막 궁금하고 알고 싶어지고 그런 거 없나." 수화기 너머의 재환에게 탄식을 했다가 내가 이제까지 내 얘기할 때는 뭐 듣다가 그 사람 한 마디에 번쩍 깨냐며 이제 인정하라는 구박만 들었다. 마침 주말이었다. 다니엘은 곧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깨우침 받기 위해 저녁에 재환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점심에는 평일 내 미뤄뒀던 루피의 예방접종을 위해 동물병원에 가야 했다. 회사에 취직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동물병원이었고, 주말에 번화가가 아닌 동네로 외출을 나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간편한 버건디 후드 차림에 루피를 넣은 캐리지를 들고 아직 낯선 동네의 거리를 걸었다. 루피도 외출이 낯선지 가는 길 내내 울어대는 바람에 다니엘은 열 보마다 캐리지를 얼굴 가까이 들어 루피를 어르고 달래야 했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에 겨우 도착하고 나서야 루피는 울음을 멈추었고, 다니엘은 루피를 안은 채 대기석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 큰 동물병원은 아니지만 주말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니엘을 포함해 두 명,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이나 간식들을 둘러보며 또 무얼로 놀아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니엘이 루피에게 말을 거느라 정신 없는 동안 문소리가 들리면서 세 번째 손님이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어요?” 하고 묻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친근해 그 손님이 단골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답하는 그 손님의 목소리도 제법 친근했다. 친근, 아니, 다니엘에게 그 목소리는 익숙한 것에 더 가까웠다.
"강다니엘 씨?"
놀라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벼운 사복 차림의 성우였다. 서로 마찬가지지만 매일 잰 듯한 양복차림을 고수하는 성우가 톤 다운된 하늘색 셔츠에 검은색 진을 입은 걸 보니 그 모습이 더욱 낯설어 다니엘은 눈앞의 사람이 옹성우 팀장이라는 사실을 아주 천천히 인지할 수 있었다. "아." 인사 대신 바보 같은 소리가 나왔다.
"다니엘 씨네 고양이?"
"네? 네, 네."
"러시안 블루죠?"
"어, 네, 맞아요."
"이름이 뭐예요?"
"루피요."
"고무고무 루피?"
"팀장님 만화도 봐요?"
진심으로 의심스러워하는 다니엘의 질문에 성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뭐야, 그거 안 본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인간적이기보다 더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성우와 함께 온 반려동물은 없었다. 대신 그는 병원 진열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개에게 줄 수 있는 간식들을 잔뜩 골랐다. 정말 잔뜩, 한 번에 스무 마리를 먹일 수 있거나 한 마리가 삼, 사 개월은 먹을 수 있는 양에 다니엘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팀장님 개 키우세요?" 마지막 간식을 골라 담으며 성우가 답했다. "아뇨, 센터에 보낼 거예요."
"센터요?"
"이 동네에 유기견 센터가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우리 같은 동네였네요."
"진짜요?"
"나 여기 옆에 있는 공원 근처에 사는데. 다니엘 씨 동네 병원 온 거 아니에요?"
끄덕끄덕, 다니엘은 차마 말로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위아래로 흔들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모르는 것투성이다. 어디서부터 놓치고 있던 걸까, 만약 잘못 보고 있었던 거라면 다니엘은 다시 한 번 제대로 성우를 알아가고 싶었다. 마음이 꼭 그랬다.
"센터는 언제부터 다니셨어요?"
그래서 성우가 굳이 돌리려고 했던 주제를 스스럼없이 잡아 세웠다. 성우의 망설이는 혀끝이 둥글게 말렸다가, 회식 자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한 삼 년? 예전에 개를 키웠었는데, 근데 정말 옛날 얘기예요. 초등학생 때부터 키우던 리트리버가 있었어요. 이름이 순이였는데, 맞아요 애가 너무 순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어요. 되게 뻔하죠. 진짜 눈도 못 뜨는 애기 때부터 키워서 늙어서 무지개 다리 건널 때까지 키웠으니까, 십 년 조금 넘었죠. 정이 많이 들었어요. 나한테는 가족이었고 친구였으니까. 그래서 떠나보낼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 때 대학 새내기였는데, 힘들어서 어떻게 보냈는지도 잘 기억 안 나요. 가족끼리 새 강아지를 입양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못했어요. 두 번은 못하겠더라구요. 정 들고 보내는 거. 그 이후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어요. 학생 때는 생각날 때마다 센터에 가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직장 다니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뭘 하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정기 후원하고 시간 날 때마다 직접 찾아가게 됐어요.
"그게 다예요."
담백한 얼굴이 다니엘을 올곧게 바라보아왔다. 다니엘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루피를 계속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손에 털이 잔뜩 묻어 나오는데도 손이 허했다.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을 수도 없으면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들었다.
성우가 상체를 살짝 숙여 다니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심장이 또.
"매일 지각하고 일찍 가던 게 얘 때문이었어요?"
"요즘은 잘 안 그러잖아요."
"맞아. 그건 그런데, 맞죠?"
"…네."
"이거 알아선 안 될 비밀을 안 기분이네."
성우의 눈높이가 한층 더 낮아져 루피와 같아졌다. 손을 뻗지는 않고 눈을 깜빡, 깜빡 하고 두어 번 꼭 감았다가 떴다. 다니엘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알았어, 루피야. 너네 형 일찍 보내줄게."
그제사 다니엘은 깨달았다. 아아, 난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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