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지는 섬'으로 향했다. '사라지는 섬'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을 사방의 망망대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옹기종기 쌓인 방파제 뿐이었다. 그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나눌 수 없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느라 황망하게 펼쳐진 도로에 시선을 고정해야만 했고 쿠로상은 조수석에 앉아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손 쓸 수 없이 하염없는 바다가 물결을 만들어 방파제를 끊임없이 때리고 있었다. 쿠로상은 눈앞에 달려올 것만 같은 바다의 압도적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흘끗 곁눈질로 본 그의 몰입한 옆모습에는 씁쓸함이 잔뜩 배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워 나는 더욱 운전에 집중했다.
'사라지는 섬'에 들어서자 환영 인사 팻말과 함께 선착장이 보였다. 밀물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유람선은 증기를 내뿜으며 출항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선착장은 분주했다. 차들이 유람선에 탑승하는 줄을 따라 들어가 유람선의 묵직한 아랫배 한 켠에 주차했다. 차의 시동을 끈 것과 동시에 출항을 알리는 고동이 크게 진동했다. 나는 먼저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 조수석 앞에 준비했다. 문을 연 쿠로상을 끌어 안아 휠체어에 앉히고 담요를 그의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이제는 이 일련의 과정에도 조금 익숙해졌다. 겨우 휠체어를 꺼내 앉는 것에 쿠로상도, 나도, 더 이상 참담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보기에 과연 이 익숙해짐이 좋은 것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쿠로상의 뒷편에 서서 휠체어를 미는 것은 나의 역할 중 하나이다. 예전에 비해 그의 어깨 넓이가 조금 좁아졌다고 생각한다. 셔츠 깃 사이로 살풋 드러난 목덜미는 더욱 창백해지고 있다. 그런 쿠로상의 뒷모습을 눈에 새겨넣으며 휠체어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밀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에 탈 때 사람들은 우리가 먼저 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은근하게 느껴지는 시선들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 했다. 소리 없는 웅성거림 같은 것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내렸다. 붉은 카펫이 깔린 꼭대기 층에는 오로지 5개의 객실만 있었다. 우리는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방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쓰기엔 지나치게 넓은 호화로운 객실이 나타났다. 우리의 기나긴 침묵 뒤 쿠로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 좋네.
어느 날 쿠로상은 '사라지는 섬'의 호화 여객선을 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가타부타 않고 그러자 했다. 전화기를 들어 당장 가장 좋은 방을 예약했다. '사라지는 섬'의 꼭대기는 대재앙 시대의 명물이나 마찬가지이고 많은 사람들이 모순된 안위를 느끼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그곳이 쿠로상에게도 흥미로운 곳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사라지는 섬'으로 떠나기 전에 휠체어를 수동에서 전동으로 바꾸었다. 나는 내가 영원히 당신의 뒤를 맡을 것이니 그런 것은 필요없다 했지만 내 말에 대한 쿠로상의 표정을 보고 즉시 전동 휠체어를 구매했다. 자존심 강한 그의 입에서 절대 나올 리 없는 말들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객실 내부를 죽 둘러보았다. 객실에 지불하는 요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가구나 장식들이 전부 새 것이 아닌 앤티크였다. 여객선의 창문 치고는 전망을 위해 꽤 넓게 트인 창문 바깥으로 사라지고 있는 섬의 모습이 보였다. 곧 물에 잠길 건물에 아직 블라인드를 치지 않은 어느 가정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들은 이미 아랫층까지 들이닥친 밀물과 바깥에 잠기고 있는 도시의 모습는 아랑곳 않고 자신들의 생활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섬마을에서 수중도시로 변모할 뿐 사람들의 일상에는 어떠한 지장도 끼치지 않을 정도의 첨단을 갖춘 곳이다. 당장이라도 발밑이 꺼질 것처럼 보이는 아슬아슬한 평화가 실은 그 첨단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한 관광객들은 누구든 입을 다물지 못 한다고 한다.
하지만 쿠로상은 창밖을 잠시 지켜보더니 손잡이를 작동시켜 침대 곁에 있는 테이블 앞에 휠체어를 세웠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룸서비스 메뉴를 집어들었다.
"배고프다, 밥 먹자."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생기에 넘쳤다.
*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우린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휠체어를 꺼낼 때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절벽에 떨어져 최후를 맞이할 것 같은 비극적인 침묵은 아니었다. 쿠로상이 고기를 썰 때 어떤 와인을 마실지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침묵은 제법 보람찬 것이기도 하다. 에피타이저를 꼭꼭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그의 표정을 감상하기 바쁜 것 또한 침묵에 일조했다. 내 포크와 나이프는 하얀 식탁보 위에 얌전히 놓인지 오래였다.
"안 먹어?"
"다 먹었어요. 쿠로상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불러."
"네가 내 엄마야?"
"쿠로상은 엄마랑 섹스해요?"
쿠로상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근처에 있던 냅킨을 내게 집어 던졌다. 예전, 같았으면 식탁 밑에서 정강이에 발길질이 날라왔을 텐데. 그런 생각이 불식간에 엄습하여 나도 모르게 눈썹을 늘어뜨렸나 보다. 침대에 안착한 냅킨을 줍기 위에 침대로 가 앉아 쿠로상을 돌아보자 그 역시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데, 쿠로상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당장 내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에게서 고독을 느낀다.
"리에프."
나를 부르는 쿠로상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다. 쉽게 침통해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언제나 그랬다. 심지어는 제 몸무게로 땅 위에 지탱하고 서 있을 수 없게 된 그 날에도 그랬다. 필사적으로 현실에 저항하며 비애에 젖은 나를 오히려 달래며 더는 완벽하게 체감할 수 없는 중력에 순응하는 쿠로상의 모습은 그래서 더 처연했다. 슬퍼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안타까움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더욱 안타까워했다. 내가 그런 모습들을 보이는 것이 쿠로상을 괴롭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안타까움을 덜어낼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쿠로상의 손을 잡았다. 그를 끌어안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다. 가만 있어. 내 손과 닿았던 쿠로상의 손이 빠지더니 전동 휠체어를 침대 옆에 바싹 붙이도록 조종했다. 쿠로상은 자기 팔에 온힘을 실어 휠체어에서 스스로 일어났다. 내가 도우려 하자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누워. 나는 그의 명령대로 가만히 상체를 뒤로 완전히 젖혔다. 쿠로상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불안한 것도 잠시였다. 곧 그가 내 위로 몸을 던져 쿠로상의 체중이 온전히 전해졌다.
"리에프."
"...네."
"리에프."
"쿠로상."
"리에프."
"...테츠로상."
나는 말 없이 품에 가득 그를 끌어안았다. 나의 가슴팍을 중력의 발판으로 삼은 그가 너무도 소중하여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으며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다가 자연히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테츠로의 얇디 얇은 입술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어 붙들었다. 내 시야는 오직 당신으로 가득 차고, 내 몸은 당신의 무게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배는 '사라지는 섬'의 만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고동을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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