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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디

[리에쿠로] 야쿠자 AU 2 (R-18)




쿠로오 테츠로의 아파트는 여느 때보다 정적에 잠겨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은 1을 넘어가고 있고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불이라곤 너른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도시의 전깃불이 전부였다. 쿠로오의 시선은 반짝거리는 그 불빛들을 향했지만 그의 온 촉각은 테이블 위의 휴대폰에 곤두세워져 있었다.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갈증이 느껴졌지만 휴대폰 옆에 있는 와인 병과 잔은 그대로이다.


  슬슬 야마모토에게서 연락이 와야 했다. 좀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쿠로오가 거듭 말했으니 일이 끝나는 즉시 보고하라는 말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락이 늦어지는 것은 일이 조금 오래 걸려도 성공했거나 아예 실패해서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경우 둘 중 하나일 테다. 이번 일의 위험성은 누구보다 쿠로오가 잘 알고 있다. 관할 구역의 경계를 두고 다투고 있는 상대 조직과의 싸움이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 상대 조직 외에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배후 세력이 존재한다. 오늘 일은 그 배후 세력까지 알아낼 수 있어야 더욱 유의미하다.


  일의 위험성, 앞으로 전개될 양상 등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쿠로오였지만 입이 썼다.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쿠로오의 조직에서의 위치나 싸움에서의 전력 등을 감안할 때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옳은 판단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가책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손쓸 수 없는 영역이 생기는 것은 쿠로오에게 무척 괴로운 일이다. 그 영역에 가족과 다름 없는 조직원들의 생사가 놓여있다면 더욱 그렇다. 쿠로오는 조바심에 버릇처럼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파란색 액정이 켜지면서 테이블 위에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돈다. 고대하던 야마모토에게서다. 쿠로오는 조급하지 않게 휴대폰을 쥐고 전화를 받았다.


  "야마모토."

  - 늦게 연락 드려서 죄송합니다, 쿠로오상. 일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직 안심해서는 안 된다. 쿠로오는 휴대폰을 들고 선 채로 미동도 않았다.


  "그래, 수고했어. 알아낸 건 있나?"

  - 당장은 없지만 좀 더 조사해보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놈들 여간 영악한 게 아니네요. 오늘 맞붙은 놈들은 죄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놈들이었습니다. 자알~ 알고 있는 놈들도 몇 있었고.

  "...우리에 대해서도 그놈들이 잘 알고 있다는 증거일 거야. 아직 쉽게 얘기할 수 없지만,"

  - 네?

  "우리 중에 쥐새끼가 있을 지도 모른다."


  휴대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쿠로오는 이제 이 물꼬를 트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더 망설여서는 오늘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만 해도 관자놀이께가 뜨거워졌다.


  "섣불리 움직이진 마. 네 스스로의 손만 사용해라. 다른 놈을 통하면 안 돼."

  - 알겠습니다, 쿠로오상.

  "나머진 내일 얘기하지. 들어가서 푹 쉬어."

  - 넵. 아, 맞다. 오늘 그놈들하고 붙으면서요-


  야마모토가 운을 떼자 쿠로오는 귀와 더 가까워질 거리도 없는 휴대폰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 리에프 녀석 실력 진짜 좋던데요. 쿠로오상 말씀대로 앞으로도 계속 이만한 실전에 투입해도 문제 없겠어요.


  쿠로오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대신 소리 없이 호흡을 한 번 가다듬었다.


  "...그래?"

  - 네. 어려서 그런가, 약간 위태위태 해 보이는 면이 있긴 한데 솜씨가 좋아요. 그 뭐냐, 일당백이라 하나? 간만에 쓸 만한 놈이 들어와서 저도 좀 편하고.


  야마모토는 리에프의 실력에 몇 마디 더 덧붙였다. 마무리 보고까지 받은 쿠로오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전신의 신경을 당기고 있던 긴장감이 빠져나가자 몸이 노곤해졌다. 쿠로오는 그제야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 병을 따고 잔을 채웠다. 술술 넘어가는 목넘김과 함께 갈증과 불안함도 사라졌다. 와인을 두어 잔 비우고 난 뒤에는 소파에 아예 누워버렸다. 아직 정장을 입고 있는 채였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니 이 집안에 내려앉은 적막이 온몸을 나른하게 감쌌다. 그리고 방금 야마모토와 통화할 때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리에프는 제 손으로 직접 사지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고, 쿠로오는 곱씹었다. 조직에 들어온 지 고작 두 달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처럼 중요한 싸움에 신참을 내보내는 일은 없었다. 리에프가 다른 신참들처럼 평범하게 굴었다면, 쿠로오도 그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에프는 시작부터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코마에 들어오려면 보스인 코즈마와의 대면과 허락이 필수적이다. 누구를 통해서 들어오건 정식으로 조직원이 되려면 코즈마와 만나야 한다. 하지만 리에프는 네코마의 실세인 쿠로오의 승낙을 먼저 받았다. 며칠 뒤 코즈마와 대면식을 치루긴 했지만 실질적인 입단을 보스 외의 다른 사람에게 먼저 받는 것은 전례 없는 경우였다. 게다가 갈 곳이 없다는 핑계로 조직에 들어오자마자 쿠로오네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그것이 쿠로오에게 있어 결정적인 실수였다.


  쿠로오는 집에 중요한 서류나 물건을 두지 않아 밑천 없는 신참 하나 들이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속단했다.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15살 이후로 타인과 동거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동거를 하게 되면 그 사람과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된다. 처음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쿠로오는 외박을 할 때도 많았고 그 중 절반은 남자와 밤을 지샜다. 쿠로오가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리에프도 쿠로오의 성적 지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보쿠토를 제외하면 쿠로오는 주로 탑이었고 리에프를 잠자리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쿠로오가 간과한 것은 쿠로오 자신의 안목이었다. 처음 리에프를 봤을 때 리에프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단박에 느꼈던 그 기분을 쿠로오는 없었던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 리에프와 접촉하는 횟수가 누적되고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 동거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어설픈 관계에서 동거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일 뿐이라고. 그리고 어느 날 보쿠토와의 약속 때문에 아파트를 나서려던 참이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쿠로오의 팔뚝을 리에프가 문득 잡았다. 리에프와 처음 만난 날 났던 상처가 있는 자리였다. 이 상처, 그 사람에게도 보여준 적 있져? 늘 들떠 있는 평소완 달리 담담한 눈빛에 리에프의 속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쿠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가득 찬 물둑이 갑자기 터진 느낌이었다. 리에프가 쿠로오를 당겨 뒤에서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이 몰려왔다. 쿠로오는 장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리에프를 떨쳐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 나와버렸다.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다음날 쿠로오는 평상시의 판단력을 되찾았다. 리에프를 집에서 내쫓고 가급적 실전에 내보내 마주치는 일을 줄였다. 얼마간 줄다리기를 하던 상대 조직과의 결전을 앞두고 야마모토에게 말했다. 리에프도 데려가. 야마모토가 되물었다. 신참이라 자칫 죽을 수도 있어요? 쿠로오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실력이 있으니까 괜찮아. 데려가.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눈이 번쩍 뜨였지만 사고는 순간 정지했다. 그것도 잠시, 쿠로오는 자리를 박차고 현관으로 나갔다. 이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온 거야.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손은 재빠르게 도어락을 해제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어두운 복도 아래 장신의 남자가 서 있었다. 피를 잔뜩 뒤집어 쓴 리에프였다.


  "너...!"

  "앗, 쿠로상 빠르네여. 혹시 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검까?"

  "너 다쳤어? 야마모토가 그런 말은 없었-"

  "아, 이거여? 제 피 아니고 전부 남의 피예여."

  "뭐?"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야마모토상한테서 제 얘기도 들은 거예여?"


  이런 꼬라지로 웃음이 나와? 역정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이런 험악한 꼴을 본다면 감정이 앞설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앞섰다. 쿠로오는 인상을 힘껏 찌푸리는 것으로 감정을 억눌렀다.


  "일단 들어와."

  "넵-."


  주홍빛 현관 불 아래에서 보니 더 가관이었다. 상하의 할 것 없이 핏자국 범벅이었고 와이셔츠에는 피가 흥건히 젖어있는 부분도 있었다. 이래놓고 어떻게 모두 남의 피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 기가 막혔다. 물론 리에프의 얼굴에도 피가 튄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쿠로오는 당장 리에프를 소파로 끌고 가 앉혔다. 약간 높은 눈높이에 있는 리에프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벗어."

  "에? 쿠로상 갑자기 그러시면-"

  "상처 났는지 보려고 하는 거니까 잔말 말고 빨리 벗어."


  리에프는 아쉽다는 소리를 하며 자켓부터 벗기 시작했다. 리에프가 와이셔츠의 단추를 푸는 동안 쿠로오는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와 수건을 가져왔다. 맨몸의 상반신은 와이셔츠에 번진 피가 얼룩덜룩 묻어 더러웠다. 평균의 일본인보다 하얀 피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얼룩들은 더 두드러졌다. 쿠로오는 굳은 얼굴로 수건에 물을 적셔 리에프의 쇄골부터 닦아나갔다.


  "우와, 저 쿠로상한테 이런 서비스를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

  "야마모토상한테 앞으로 저도 자주 껴달라고 해야겠네여. 쿠로상이 매번 이래주신다면."

  "입 안 다물 거면 도로 내쫓는다."


  에-엥. 이상한 소리를 낸 뒤엔 리에프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앉은 키 차이가 나기 때문에 리에프는 쿠로오가 제 상체를 닦는 얼굴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앞머리에 가려져 얼굴의 반쪽 밖에 보이지 않지만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에 화가 난 걸까. 리에프는 즐거워하며 쿠로오가 움직이는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 좇았다. 그러다 뒤돌아 앉으라는 쿠로오의 명령에 잠시 그 즐거움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쿠로오의 손길이 더욱 자세히 느껴졌다. 지나치게 꼼꼼한 손길이다. 그에게는 성적인 의도가 없을지라도 리에프는 그렇게 느끼고 말았다.


  "다시 돌아."


  이번에는 따뜻한 물수건이 얼굴에 닿았다. 리에프는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이마에서부터 콧등을 훑고, 옆으로 뻗어 눈가와 볼까지. 핏자국을 정성 들여 닦는 손길이 마침내 리에프의 입가에 닿았다. 착한 아이처럼 고분히 다물렸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손길이 거둬지는 순간 눈을 뜨니 쿠로오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로상?"

  "⋯⋯."

  "제 얼굴에 뭐 묻었어여?"

  "...상처."

  "에?"

  "상처 났잖아. 자신만만하더니."


  수건으로 피 얼룩을 닦아내자 리에프의 왼쪽 입가에 칼이 낸 작은 상처가 드러났다. 상대편 녀석을 도발할 때 얼굴 근처에 칼이 스치기는 했지만 상처가 난 것은 눈치 채지 못했다. 리에프가 상처를 가늠하려 제 손으로 만지려 했지만 그 자리는 이미 쿠로오의 손가락이 차지하고 있었다. 통각은 없었다. 다만 상처의 표면을 쓰다듬는 손가락의 촉감 만이 전해졌다. 아주 소중한 것을 쓰다듬는 그런 손길이었다. 리에프는 입꼬리에서 마침표를 찍은 쿠로오의 손가락을 살짝 물었다. 고개를 숙인 채 쿠로오를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났다.


  "읏-..."

  "⋯⋯."

  "하이바..."


  리에프는 쿠로오의 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그가 손을 빼지 못 하게 자신의 아귀힘으로 붙들었다. 쿠로오의 엄지손가락을 지긋이 깨물었다가 검지와 엄지 사이의 연한 살로 파고든다. 느릿하지만 치밀하게, 그의 투박한 손 구석구석을 혀로 조형물 따위를 감상하듯이 빠짐없이 핥는다. 마침내 리에프의 입술이 쿠로오의 손바닥에 닿았다. 리에프의 호흡이 닿은 그의 손바닥 안에는 욕정, 오로지 쿠로오를 향한 욕정 만이 적나라하게 피어났다.


  쿠로오가 리에프의 뒷목을 감싸 당기고 리에프는 그런 쿠로오를 뒤로 밀어 넘어뜨려 그의 입술을 찾느라 소음이 났다. 이성의 끈 같은 것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쿠로오의 입술이 기다렸다는 듯이 열렸기 때문에 그의 혀에 닿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리에프의 얼굴이 겹쳐지자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은빛 머리칼과 감긴 눈꺼풀, 그리고 날랜 콧날이 쿠로오의 다급한 시야에 어른거렸다. 쿠로오는 리에프의 뒷목을 바짝 당겼다. 다른 손으로는 그의 턱을 감싸쥐고 정신없이 혀를 섞었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는 그 행위는 억눌렀던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처럼 절박했다.


  "쿠로상, 하..., 아래, 섰어여..."

  "넌, 으응, 아까부터 섰잖, 아-"

  "그야 쿠로상이, 쪽, 그렇게 만지, 후으, 니까..."


  쿠로오의 셔츠 단추는 어느새 모두 풀려 있었다. 리에프가 셔츠를 벗기려 하자 쿠로오는 별다른 말 없이도 허리를 들었다. 짧은 동작 사이에 팽팽해진 하반신을 밀착시키는 능숙함이 리에프의 신경을 긁었다. 쿠로오가 꼼꼼히 닦은 리에프의 상반신을 더듬는 손길도 그에게는 시험 받는 느낌이 들게 했다. 쿠로오의 벨트를 풀어서 빼내는 리에프의 손이 거칠었다. 그의 악력을 감지한 쿠로오는 하반신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랑 할 때, 깔려본 적 별로 없져?"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리에프의 입가에 걸린 수컷의 미소가 잘 보였다. 쿠로오는 대답 대신 리에프의 골반에서부터 손을 미끄러뜨려 이미 풀어헤처진 바지 앞섬을 지나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인데? 하는 눈빛으로 반문하고 있었지만 쿠로오가 짓는 웃음은 아슬아슬했다. 리에프의 말대로 쿠로오가 바텀을 한 적은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쿠토와의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익숙치 않을 뿐이다. 게다가 쿠로오는 본능적인 위치선정을 따르는 데에 저항할 만큼 상황판단에 어둡지도 않았다. 다른 수컷이 자신을 정복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을 밑에서 올려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쿠로오는 손쉽게 리에프의 브리프를 벗겨 그의 페니스를 물었다. 망설임 없는 그의 대담한 행동에 리에프는 잠시 손을 놓고 말았다. 그러나 곧 쿠로오가 귀두를 이빨로 무는 바람에 그의 앞머리칼을 헤집듯이 쥐고 입안에다 피스톤질을 했다. 선정적으로 구겨진 쿠로오의 미간과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보자 페니스가 한층 더 부풀었다.


  "쿠로상이 내 걸 빠는 얼굴, 하아-.. 매일 상상했어요."

  "⋯⋯."

  "여길, 후으, 이렇게 만지면..."


  리에프는 마치 고양잇과의 동물을 조련하듯 쿠로오의 턱밀을 간질였다. 그리고는 한창 불거져 있는 목울대를 기다란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응-..! 읍, 응-"

  "칠칠치 못하게, 내 정액을 흘리는 것까지... 도요."


  탁한 색깔의 점액이 쿠로오의 양 입가로 흘러내렸다. 잔뜩 부풀어 커다래진 리에프의 것을 온전히 물 수 없어 평소의 테크닉도 발휘할 수 없었다. 성난 페니스의 크기를 가리키며 혼혈이라서 그런 거냐는 농짓거리 역시 목구멍으로 넘치듯 넘어오는 정액과 함께 삼킬 수밖에 없었다. 리에프가 사정할 때 페니스가 목젖을 찌르는 바람에 생리적인 눈물까지 맺혔다. 눈물이 맺힌 곳은 이내 발갛게 물들었다.


  리에프는 낯선 이물질을 힘겹게 삼키느라 가쁜 숨을 쉬는 쿠로오를 다시 밀어 넘어뜨렸다. 그를 전라로 만든 뒤 정사의 분위기에 흐트러진 쿠로오를 감정하는 시선으로 훑어내렸다. 조명이 없어서인지 담녹색이던 눈동자가 검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단순해 보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다. 저 눈에 담긴 것은 명백한 욕정이지만 순수하지 못한 그 이면에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다. 쿠로오는 그 한꺼풀을 벗겨내고 싶어 손을 뻗었다. 암녹색 눈동자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쿠로오는 한결 같은 미소를 짓는 리에프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깨달았다. 다시금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다리 벌려요, 지금 넣어줄 테니까."

  "너- 읏, 혀 짧은 말투는 집어치웠냐?"

  "이 편이 좋아여? 집중하라고 도와준 건데."

  "상관 없어. 으.. 됐냐?"

  "더. 더 벌려요."


  전에 없이 단호한 말투에 이상한 오한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상한 건 오한은 맞는데 마디가 있는 곳마다 저릿저릿하기 때문이다. 쿠로오는 잠시 망설이다가 무릎 아래로 제 손을 집어넣어 양다리를 한껏 벌렸다. 팔이 하나 더 있어 눈가를 가리고 싶은 기분이다. 보쿠토랑 할 때 이런 자세를 해본 적이 있긴 한데 능란하게 할 정도로 자주 해보진 않았다. 불을 키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쿠로오가 치부를 드러내려 애쓰는 사이 리에프는 뒷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 자신의 것에 씌웠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병을 거꾸로 들어 손에 붓고는 바로 쿠로오의 애널에 가져다 댔다.


  "-차..! 설마 와인이냐?"

  "이것밖에 없어요."

  "멍청아, 저쪽에 젤 있어. 가서-"

  "급해요. 그럴 시간 없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한쪽 다리가 수직으로 들렸다. 분명 제 다리였지만 낯선 각도의 다리 뒤로 희미한 웃음기만 남은 리에프의 얼굴이 보였다. 애무도 없이 덤벼들 때부터 급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조급해하는 리에프의 모습은 처음이다. 하지만 신기해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잠깐, 천천히 넣- 허억...!"


  끝까지 다 들어왔다. 방금 입으로 크기를 헤아려 봤기 때문에 쿠로오는 깊이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찢어지게 아픈데 끝까지 다 들어온 게 아닐 리 없다. 아파서 눈가가 떨릴 정도인데도 발끝에 퍼지는 저릿함에 아릿한 쾌감을 느꼈다. 쿠로오는 무의식 중에 활짝 벌렸었던 다리를 리에프의 허리에 감았다. 양팔은 리에프가 삽입하던 순간부터 그의 뒷목에 감겨 있었다.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인내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리에프의 날갯죽지를 꼭 붙들었다.


  "쿠로상."

  "읏, 응, 흐으으... 으응-"

  "나 봐요."


  리에프의 가는 검지 손가락이 쿠로오의 고개를 가뿐히 고정시켰다. 쿠로오는 내내 내리깔던 시선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피냄새와 땀냄새가 뒤섞인 진한 체취가 먼저 코를 찔렀고 다음엔 리에프의 이목구비가 쿠로오의 시야에 가득 찼다. 입을 맞춰 오면서 리에프의 페니스가 쿠로오의 안을 침입하듯 파고 들어왔다. 덜컥, 하고 신체의 장기가 위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쿠로오가 바쁜 입술 새로 숨을 들이쉰 사이 살짝 빼냈다가 내쉬려 하면 쉴 틈 없이 다시 찔러 들어온다. 숨쉬기가 힘들어 다리를 바둥거리자 리에프의 커다란 손이 쿠로오의 종아리를 단숨에 쥐어 제 허리에 밀착시켰다. 벗어날 곳 하나 없이 쿠로오는 완벽히 리에프의 아래에 깔려 있다.


  리에프와의 교합은 합을 맞춘다기보다 짐승의 그것에 가까웠다. 그는 쿠로오의 내부를 무자비하게 찌르고 급소만을 정확히 노렸다. 쿠로오는 그 추삽질이 몇 번이고 보았던 그의 난도질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와 하는 것보다 고통이 컸지만 동시에 쾌락도 컸다. 고통으로 인한 쾌락이 크다는 표현히 더 알맞을 것이다. 다른 수컷에게 짓눌리고 정복 당하는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성적인 쾌락이었다. 압박의 주체는 주로 쿠로오 본인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몰랐던 열락의 도화선을 타인에 의해 발견하는 것은 쿠로오를 더욱 그 쾌락에 허덕이게 했다. 허리를 격렬히 흔들고 구멍을 빠듯하게 조이는 행동은 머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쾌락에 대한 반사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쿠로오는 리에프에게 정신없이 매달렸다. 압도적인 힘에 꼼짝 못 하고 밑에 깔려서 생소한 쾌감에 발버둥쳤지만 울지도 않고 교성을 내지르지도 않았다. 리에프는 쿠로오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여 피스톤질을 하는 도중에도 유두를 유린하고 쿠로오가 민감한 목덜미 이곳저곳을 깨물었지만 쿠로오는 제 안의 욕정을 온전히 터트리지 않았다. 다만 리에프가 휘두르는 난폭한 성욕과 그것이 주는 쾌락을 견뎌내듯 받아들일 뿐이었다. 인정사정없이 피치를 올리던 리에프는 예고도 없이 쿠로오의 안에서 파정했다. 타이밍 좋게 쿠로오도 직전에 사정했다. 만지는 손길 없이도 사정한 쿠로오의 뱃가죽에는 아무렇게나 퍼진 정액이 번들거렸다. 쿠로오는 호흡을 고르면서 방금 제 안에 사정한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암흑에 잠겨 알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가,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쿠로오를 올려다본다. 그 눈빛이 말하는 것을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 비키시지?"

  "한 번 박는 것 가지곤 안 되는 데여. 봐, 나 아직도..."


  안에서 리에프의 것이 다시 팽창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쿠로오는 다리를 있는 힘껏 빼서 리에프의 가슴팍을 뻥 차버렸다. 급습을 당한 리에프는 어쩔 수 없이 삽입했던 자신의 물건을 빼내며 울상을 지었다.


  "아파여-."

  "가서 씻고나 와. 비린내 나."

  "다시 섰는데여...?"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이거 다 세탁기에 넣어."


  쿠로오가 바닥에 떨어진 리에프의 옷가지들을 주워 던졌다. 피투성이 옷가지들을 뒤집어 쓴 리에프는 군말 없이 욕실로 향했다. 웬일로 말을 잘 듣나 했더니 욕실 안에서 리에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쿠로상 이름 부르면서 자위해도 돼여?"

  "...미친 놈이."


  닫힌 욕실 문 너머로 슥삭거리는 은밀한 소음이 들렸다. 쿠로오는 이마를 짚으며 구겨진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갑과 라이터를 찾아 들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 리에프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그대로 들을 자신은 없어 대충 바지만 꿰어 입고 테라스로 나왔다. 찬 밤바람이 쿠로오의 상체를 훑고 담배 연기를 흩날리게 했다.


  테라스 아래 펼쳐진 시가지의 불빛들에 눈이 따갑다는 핑계로 눈가에 번진 눈물자욱을 문질렀다. 쿠로오는 순식간에 전도되어 버린 리에프와의 관계에 대해 오늘 자신이 한 번도 저항한 적 없음을 시인했다. 부하와는 자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도 깨버렸고 리에프를 밀어내야 한다는 이전의 명정한 판단력도 무색해져 버렸다. 리에프가 들어오고 난 뒤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쿠로오는 리에프와의 관계을 비롯해 이 공간과 조직의 전략, 모든 것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초가을 바람에 이미 다 나은 팔뚝의 상처가 아려왔다. 그렇게 스치는 바람에도 그는 괴로웠다.